파란만장

주유소에서 낯선 차와 함께...

휼리 2009. 8. 14. 11:58

사람들은 나보고 카레이서 같이 생겼다고들 하지만 난 정말 운전하는 게 싫다.
'운전' 이라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도 없을 뿐더러
'자동차'라는 그 복잡한 구조의 기계덩어리가 어느날 고장이라도 나는 날엔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지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단치도 않은 직업 덕에 미국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차가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이 안된다는 필수 불가결한 이유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렌트 카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출장 초기라 호텔과 회사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경이 쓰이는데
그날은 기름이 바닥이 나서 주유소에 들려야만 했다.

 

그동안 얼마나 운전했었다고 습관이 생겼는지
예전 출장에서 미국차를 끌고 다녔을 때 처럼

아무 생각 없이 주유대가 차의  오른쪽에  오도록 차를 세워놓고
기름을 넣으려고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왠걸 이번에 빌린 차는 일본 차인지라 주유구가 왼쪽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아.. 새로운 발견이고나.. 하고
차를 돌려서 반대쪽 주유대에 댔는데


이.런.뎬.당.!

 

똑같은 방향으로 차를 돌려서 진행하는 바람에
여전히 차의 주유구는 주유대와는 반대 방향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얼굴에 피도 쏠리고
주유소에 있는 사람들도 슬금슬금 내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차를 다시 돌리기만 했어도 됐으련만
관객들의 시선을 무시하지 못하고 덜 민망해 보고자 나름의 센스를 발휘해
'아하!' 하며 머리를 손으로 툭 때려주는 제스쳐를 연출해 주었다.

 

그 순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머리 위에 머리띠 마냥 올라가 있던
내 유일한 명품 선글라스가
다리와 안경알과 몸체가 분리되며 땅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후다닥 선글라스의 유체를 줏어들고
차에 뛰어들어
다시 제대로 주유대에 차를 댄 다음에
등에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침묵으로 받아내며
주유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기까지
내 얼굴이 얼마나 불타올랐는지 샌디에고의 노을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나중에 친구들한테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
계기판에 기름의 양을 알려주는 그 위치를 자세히 보면
주유대 모양의 아이콘 옆에 조그마한 삼각아이콘이 있는데
그게 주유대 아이콘 오른쪽에 있으면 주유구가 차의 오른쪽에,
왼쪽에 있으면 주유구가 차의 왼쪽에 있다는 뜻이라더라...

 

우얐거나
차에 익숙지 않으면 머리가 좋거나 눈치라도 빨라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사건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두어달 후에
이번엔 새턴이라는 메이커에서 나온 차를 몰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도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에 갔는데...
보통 운전대 아래쪽 계기판 언저리에 붙어 이어야 할
주유구 여는 레버가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는 것이다.


미국 출장온지 두어달..
쪽팔림이 대수냐 하며

 

의자를 뒤로 쭈욱 밀어낸 뒤에
차에서 내려 쪼그려 앉아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결국 레버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주유구 쪽으로 가보았는데
이건 머 손으로 열수 있는 홈도 없고
여기저기 두들겨 봐도 반응도 없길래
재 모하니.. 하며 쳐다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유유자적하며 호텔로 돌아와 주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호텔 주차장에서
한 십여분을 고민한 끝에

발견하고 말았다,
적정한 힘과 정확한 위치로 주유구의 판넬을 눌러주어야
'퍽' 하며 판넬이 튀어오르면서 주유구를 노출시켜 준다는 사실을....

 

인터내셔널리 통일된 자동차 디자인 가이드라인 같은 건 정말 없는걸까..
아니면 지금 내 뇌 속에서는
세포와 함께 상식이라는 것도 함께 없어져 주고 있는 것일까..

렌트 카 인생은 정말 험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