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Nothing Happens...

휼리 2008. 12. 19. 18:51

내 여가시간의 대부분이 성경과 신앙서적 읽기로 채워져 있을 때,

가끔씩 내가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보곤 했다.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외면한 채

사랑이니, 정의니, 구원이니를 고심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원칙에 대한 고민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현실에 100%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팀원의 절반이 프랑스로 떠나가고

급한 일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 요즈음

회사에서도 별 가책 없이 드라마를 보거나 텍스트 북을 읽고 있자니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현실 도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앙 서적에 파 묻혀 있을 때에는, 아무리 깊은 몰입의 상태에서도,

'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더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에 가깝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항상 내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드라마와 소설 속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다른 환경 속의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가끔은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인 양 치부해 버리고

현실의 날 돌아보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현실의 내가 그렇지 않음에 속상해 한다.

   

오늘 나는

가까운 사람들의 안부를 듣고,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지인들과 해가 없는 가벼운 농담과 친밀함을 나누었지만,

그 일들 중 그 어느 것도

드라마 속의 총 천연색 빛깔을 띤 극적인 상황들과 견줄 만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가 무가치했노라고 불평하고 있다.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지금의 삶에 대한 통찰과 위로를 얻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현실의 일상이 평온할 수록

감사 대신 씁쓸함이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사.세.가 16부작인 것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8권인 것이 다행이랄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