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Zone..
어려서 엄청 즐겨 보던 시리즈 중에 환상특급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현대판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세상에 있을 법한 온갖 기괴한 일화들을 두 편씩 엮어서
으스스한 목소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방송이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는데
그 감기의 증상이라는 것이 사람을 폭력적인 괴물로 변하게 하는 것이어서
동네 사람 모두가 새로 이사온 일가족을 몰살시킨 다음에야 감기에서 회복된다든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침대 밑에는 그림자 인간이 살고 있는데
밤만 되면 기어 나와서 아이들을 해치는 이 그림자 인간들이
자기가 사는 침대의 주인만큼은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떤 아이가
싫어하는 친구를 혼내 주기 위해 그림자 인간을 이용하려 했다가 결국 자신의 꾀에 당한다든지 하는
주로 으스스한 내용의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에피소드 중에 하나는 세상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창고에 관한 것이다.
그 창고로 들어가는 입구는 세계 어느 곳에나 있긴 하지만
정해진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다.
운 좋게 딱 맞춰진 타이밍에 열린 입구를 찾아서 소원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꼭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마치 분실물 보관 창고 같이 수 많은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 그 창고 안에서
내 소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소원 창고에는 그 아이템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떠다니는 밝은 구 모양의 안내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안내 구를 볼 수가 없다는 제약이 있다.
그래서 정말 운 좋게 같은 시간에, 창고 안 같은 공간에 들어온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만
서로를 도와서 아이템을 찾을 수 있고,
아이템을 찾고 나서도 그 아이템에 붙어있는 설명서를 잘 이행해야만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 소원을 이루기란 결국은 꾸며낸 얘기일 뿐인 환상특급 속에서도 그렇게 어렵다. ㅡ.,ㅡ)
이 에피소드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둘 다 소원 아이템을 찾기는 하지만 아이템을 이용해 소원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다.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기회를 놓친 것에 절망하는 주인공들 앞에
창고는 소원을 찾아온 또 다른 사람들을 보내주고
주인공들이 창고의 안내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끝난다.
다른 사람이 내게 필요한 것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이 에피소드의 전제가
원체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를 잘 하는 내 성격을 정당화 하는데 안성맞춤 이어선지
아니면 나도 그렇게 나도 모르는 내 필요를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들어 곧 잘 이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