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는 마음
프랑스에서도 아마도 한적한 중견 도시 쯤 되려는 샤르트르에서 살면서
가장 적응하지 못했던 일들을 꼽자면...
- 손님이 들어와도 본체 만체 하는 웨이터에게 아무도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이
웨이터님께서 돌아다 봐 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는 것
- 무단 횡단 하는 사람들을 차들이 무조건 기다려 준다는 것
- 그리고 심지어 직진하는 차가 비보호 좌회전 하는 차에게 양보해 준다는 것
몇날 살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나도 그런 환경에 익숙해 져서
무단횡단은 기본에, 달려오는 차가 있어도 알아서 서겠거니 하는 배짱과
웨이터 님에게 무시당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공력을 쌓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샤르트르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에 비해서
남의 친절에 기대어 사는 법에 정말 익숙한 게다.
내가 그랬던 것 만큼 남들도 나에게 인내하리라는 믿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인내하고 양보하리라는 자세..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와서도 한국 스타일을 고집하며
끼어들기를 하거나, 경적을 울리거나, 웨이터를 쫓아 카운터 까지 침범 하는 모습들을 만날때면
우리가 이들의 여유로움을 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익을 볼 때면 모른체 하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손해가 나면 금새라도 억울해지는 그런
약삭 빠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돌아보면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할 때는
주로 마음이 바빠서 쫓기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당장 내가 바쁘니 남 따위 신경 쓸 수 없어'가 그런 배려 없는 행동의 당위성이었다.
한국 사람 기준에서는 답답해서 미쳐버릴 정도의
그 여유가 부러운 것은
아무리 바빠도 주위를 돌아봐야만 하는 그 찬찬함이 끼칠 해악이,
'바쁘다 바빠' 때문에 누군가를 낙오자로 낙인 찍거나,
비판하거나, 외면하는 데서 나오는 해악보다 훨씬 경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손해 보고 살고
조금 바보 같이 살고
조금 느리게 사는 것...
지치고 피곤하고 밥 먹을 틈이 없어도
자기를 바라며 몰려 오는 군중을 외면하지 않은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 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