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Sweet water, Arizona
지난 7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단기선교라는 걸 가봤다.
남 가주 사랑의 교회가 매년 나바호 원주민 아이들을 위해 열고 있는 여름성경학교(VBS) 미션에
샌디에고 한빛 교회도 함께 참여하고 있어서 운 좋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었다.
총 5~6차에 걸쳐 New Mexico와 Arizona 등지의 나바호 원주민 보호 구역 내에서 진행되는 원주민 단기선교 중
내가 참여한 것은 Arizona주에 있는 Sweat water라는 지역에서의 4차 캠프였다.
가기 전부터 물과 시설 부족으로
올해 단기선교지 중 가장 열악한 곳이라는 정보를 전해 들어서 각오한 바가 있기는 했으나
거의 하루가 걸려 도착한 보호구역은
화씨 100도가 넘어가는 더위와
있어야 할 것 같은 주유소나 슈퍼 같은 편의 시설 대신
가끔 소와 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광활한 대지,
그리고 포장되지 않은 도로 탓에 앞 서 가는 차의 번호판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쉴새 없이 날아드는 흙먼지들이
여기도 그 잘 산다던 미국 땅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미국에서 찍었다 해도 믿을 만큼 자연 그대로의 황무지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현지교회에서는 마침 교회 창립 25주년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VBS 팀을 위해서 이미 땅의 덤불을 제거하고 대형 텐트를 두 개나 추가로 설치해 주었는데
도착 예배시간에 텐트 밖으로 보이는 지평선과 아름다운 하늘색이 주는 아름다움은
모세의 장막에서 보는 하나님의 영광을 살폿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샤워 실도, 수세식 화장실도 없으리라 던 아마게돈적인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손을 봐주던 원주민 아자씨의 수고 덕에
우리는 도착한 날부터 샤워와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음.. 은혜도 줄을 잘 서야 누릴 수 있다고 해야 할까..? ㅡㅡ;;
여기서 '우리'란 구체적으로 두 개의 그룹으로 구분된다.
VBS 직접 담당하게 될 청소년 교사 그룹과
차량 및 주방 그리고 총괄 책임 등을 담당하는 성인 그룹 등 총 51명으로 구성된 4차 단기선교 팀 중에서
남자들은 하나 밖에 없는 교회 건물 안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야외에서 텐트와 간이식 화장실을 써야 했으므로 '우리'에는 언급되지 않았고
촘촘하게 짜여 진 VBS 때문에 개별활동을 할 수 없었던 여자 청소년 그룹들은 수세식 화장실을 쓰는 은혜는 같이 누릴 수 있었으며,
나처럼 주방사역을 하거나 청소년 그룹 중에도 짬이 있어 개인 시간을 낼 수 있었던 몇몇의 특권층들은
일용할 샤워를 은혜로 받았었다...
돌아보면 그렇게 선택된 그룹으로써 물을 써댔으면서..
남들이 설거지 할 때, 양치질 할 때 쓸 데 없이 수도를 틀어놓는다고 툴툴거렸으니..
내 벼락 아니 맞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엑스트라 은혜 꾸러미 였고나..
아이들을 '꿈나무'라고 처음 부르기 시작한 건 누구였을까...
하얀 옷을 잠깐 입고 있기만 해도
사람 발자국 하나에도 흩날리는 붉은 흙먼지들이 내려 앉아서
애초에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아이들은 잠깐의 행복과 작은 친절에도 그지없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꿈나무인건, 그 아이들이 장래에 가지고 있는 꿈 때문만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어른들의 맘 속에도 희망이 자랄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는 그들만의 능력 때문이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준비, 점심도 지났구나 싶으면 또 저녁준비..
몇 명이나 먹게 될지 몇 시간 동안이나 배식을 해야 하는 건지 당췌 알 수 없었던
주방 팀의 오리무중 스케줄 속에서 나 혼자 피곤해 지쳐서 까칠해져 있는 동안
저 사진 속의 아이들 이름 하나 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 했다는 게 참 부끄럽다.
밥 한 그릇 퍼 주면서 속으로 짧은 기도라도 해 줄 걸..
이 땅에 오기 전에 하나님께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구체적인 제목들을 공부해 오지 못한 것이,
영어 대신 저들의 말로 따듯한 인사 한번 건네지 못한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아니.. 나바호 원주민들은 둘째 치고라도
같이 떠났던 단기 선교팀들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
같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원주민 단기선교라는 틀 안에서 또 다른 지체로 합해졌는데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는지,
또 어떻게 하면 나도 예수님을 닮아서 지체를 세우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보다 더 고민해보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는 것이 후회스러웠다.
준비되지 못한 가운데서도
매일 아침의 QT 말씀으로 나를 견책하신 하나님..
삶으로 보여지는 믿음의 모습들로 나를 조용히 이끌어주신 지체들..
어쩌면 이번 단기선교는
원주민들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부족한 나를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대신에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나바호의 척박한 땅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뿌려지기를 기도합니다.
푸른 의의 나무가 그 건조한 붉은 땅 가운데 무성하게 자라나
온 미국을 덮고 또 세상을 덮어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