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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ty Time

하나님의 커밍아웃

마가복음 15:42~46

42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45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46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고, 공회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 사회 핵심부에 있었던 사람이지요. 사도 요한은 그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요한복음 19:38)"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요셉이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세상에 드러내기로 합니다.
빌라도에게 당당히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지요.
그 동안 그를 옥 매었던 두려움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이기는 순간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부 목사님은 이를 '커밍아웃'이라는 말로 표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가시던 날 밤에 이 커밍 아웃에 실패했습니다.
목숨을 잃을 것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두려움을 종종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해야 그 의미가 쉽게 통하는 구절을 발견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사도 요한의'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라는 말에서 사랑은 믿음으로 바꿀 때에 더 쉽게 이해되는 것 같이요.

   

요한1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베드로에게는 이 때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의 부끄러웠던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했던 것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 1 사도로 성장했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무서운 그러나 용기를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여 대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를 시인해 주시는 영광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상벌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잘 생각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커밍 아웃을 위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뻔뻔하고 은혜를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기로 작정하지만 않는다면요.

교회를 다니고 나서부터 제가 예수님께 하는 제일 큰 잘못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줄곧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얼굴을 맞대고 살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이 땅의 임금으로 오실 것이라고 오해하긴 했지만
저는 종종 예수님이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습니다.
하나님이셨던 분이 사람으로, 그것도 목수의 아들로 오셨다는 그 기적 같은 사실을 잊곤 하지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던 분이,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 해야 하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부자가 아니라 낮고 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것을요.
한낱 피조물인 저를 사랑하셔서 창조주께서 그 자리를 버리고 피조물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그 기적을 잊곤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보다 더 큰 사랑의 확증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커밍 아웃이 아니겠습니까.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깊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아무것도 필요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채우실 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께서
교회된 우리 하나 하나가 없이는 그 충만함을 포기하셨다고요.. 우리가 있어야만 충만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요.

   

오늘은 주의 날, Christ-mas입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시는 그 고백이 우리의 삶 속으로 형체를 가지고 찾아오신 날이지요.
아기 예수로 오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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