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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엄마..

Live> 끄적끄적 | Thu, 05 Jun 2003 19:30:10 +0900

요새는 엄마와의 대화가 매일 같이 전쟁입니다.
늦어진 결혼 탓이 제일 크지요..
엄마는 당신의 결혼이 늦어져 이제껏 고생하는 거라며
저는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시집 보내겠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엄마나 저나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다 보니
요새는 정말 주고 받는 말들 속에 가시가 아니라 비수가 꽂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엄마한테 화나 있는 상태로 지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참.. 좋은 분입니다..
직업이 불안정했던 아버지를 하늘로 여기고
요새는 도배사라고 불리는 그 힘든 일을 20년이 넘도록
엄마 나이 60을 바라보는 이제껏 계속해오고 계시죠.

남의 집 엄마들처럼 제 월급을 달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저 엄마가 입을 거, 먹을 거 줄여서
저한테 쓸 돈을 저축하고 계시답니다..

오늘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신달자님의 [내 나이를 사랑한다]라는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시인은
[나는 아직도 여자이고
아직도 아름다울 수 있고
아직도 내일에 대해 탐구해야만 하는 나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엄마는 요새 일이 뜸한 틈을 타서 영어를 배우고 계십니다.
세 달에 만원 하는 교회 문화센터 수업입니다..
벌써 두 어달 째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못 외워 고생이시죠..
일이 겹치는 날은 수업을 빠질 수 밖에 없지만
그 수강비 만원을 너무나 아까워 하십니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을 참 어색해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죄스러워 한다고 할까요..
한동안 여름 신발이 없다며 혼자 말을 하시던 엄마가
어느 날 만원 짜리 샌달 하나를 사오시고는
자꾸 저보고 신고 다니라고 떠미십니다..

오늘 저는 엄마를 위해 노트하나를 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한 달에 얼마가량 그 노트에 끼워서 같이 드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엄마만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라고 명령할 생각입니다.
노트는 돈의 용처를 적을 곳이구요.
그래서 한달 마다 엄마의 노트를 채점해 볼 생각입니다...

   

그 노트가 하루 빨리 빽빽해 지기를 기다려 봅니다..